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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S 보물] 3화 대한민국 시간 표준의 시작, 세슘원자시계 'KRISS-1'

우리는 일상 속에서 스마트폰과 시계를 통해 흐르는 시간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과거 자격루와 앙부일구로 시간 주권을 세웠던 역사가 있었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그 주권은 흔들렸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독자적으로 정확한 시간을 생성할 기술이 없어 일본의 표준 주파수 전파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나라의 고유한 시간 표준이 없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1978년 처음으로 원자시계를 도입하며 대한민국 시간 표준의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수입한 원자시계로 세계협정시와 동기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상용 시계를 단순히 사 오는 것만으로는 완벽한 기술 독립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 힘으로 원자시계를 직접 제작하고 관리하며, 오차를 교정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완성된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권유했으나,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독자적인 1차 주파수 표준기 개발이라는 험난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남의 기술에 의존하는 한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늦더라도 우리만의 시계를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진 것입니다. 독자적인 원자시계 개발은 기반이 전혀 없는 불모지에서 시작된 도전이었습니다. 1980년대 당시 연구원의 인프라는 매우 열악하여 기술을 구현할 장비조차 마땅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기술 확보에 매진했습니다. 일본의 코가 박사로부터 핵심 부품인 세슘을 기증받고,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광펌핑 방식의 첨단 기술을 직접 익히며 연구에 속도를 냈습니다. 낮에는 미국에서 배우고 밤에는 한국에서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치열한 과정을 통해 일본의 노하우와 미국의 첨단 기술, 그리고 한국 연구진의 끈질긴 집념이 하나로 뭉쳐 개발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20년이라는 긴 사투 끝에 2008년, 마침내 대한민국 독자 원자시계인 KRISS-1이 탄생했습니다. 이 시계는 100조분의 1초라는 경이로운 불확도를 자랑하며, 약 300만 년 동안 단 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입증했습니다. 결국 국제도량형국에 등록되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국제원자시 생성에 기여하는 1차 주파수 표준기로 당당히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계 개발을 넘어 대한민국의 시간 주권을 완벽하게 확립한 역사적 쾌거였습니다. 우리 기술로 만든 시간이 전 세계의 기준이 되는 일원이 된 것입니다. 정확한 시간은 오늘날 GPS, 통신, 금융, 우주 산업 등 첨단 기술 전반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입니다. 위성 신호의 미세한 시간 오차가 지상에서는 수백 미터의 위치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기에, 1초의 오차를 줄이는 일은 국가의 안보 및 산업 경쟁력과 직결됩니다. KRISS-1에서 시작된 도전은 현재 20억 년에 1초 오차를 갖는 이터븀 광시계로 이어지며 대한민국을 세계 5위권의 시간 강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2030년대 예정된 ‘초의 재정의’ 시대를 선도하는 리더로서, 짧은 1초 속에 담긴 꺾이지 않는 집념을 세계 무대에서 증명해 나가고 있습니다.

[KRISS 보물] 3화 대한민국 시간 표준의 시작, 세슘원자시계 'KRIS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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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S 보물] 2화 ‘자’가 아닌 ‘빛'으로 길이를 잰다? 대한민국 길이 표준의 자부심, KRISS LASER 2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신체 부위를 기준으로 한 측정 단위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12세기 영국 헨리 1세는 자신의 코에서 손끝까지의 길이를 야드로 정의했으며, 손가락 너비 같은 모호한 기준이 통용되었습니다. 특히 17세기 프랑스에는 지역마다 다른 측정 단위가 25만 가지나 존재하여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이러한 불명확한 기준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영주들이 농민을 수탈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불평등을 해소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계몽주의 사상과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맞물리며, 모두를 위한 단 하나의 기준을 만들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과학자들은 지구 둘레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단위를 고안했습니다. 1799년, 인류는 마침내 지구의 자오선을 측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미터법을 공식화했습니다. 처음에는 백금으로 만든 미터 원기가 제작되었고, 1875년 미터 협약을 통해 이는 국제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889년에는 더욱 안정적인 백금-이리듐 합금 소재의 국제 미터 원기가 등장하며 전 세계가 통일된 길이 표준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금속 소재의 특성상 온도 변화에 따른 미세한 변형이나 마모의 위험이 상존했기에, 인류는 더 완벽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적인 기준을 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1983년, 제17차 국제도량형 총회는 측정의 역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물리적 원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변하지 않는 물리 상수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미터는 빛이 진공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거리로 새롭게 정의되었습니다. 빛의 속력은 우주 어디에서나 일정한 절대 불변의 값이기에, 이를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정확도를 보장하는 표준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재정의는 전 세계에 새로운 기술 경쟁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제는 정밀한 레이저 광주파수를 제어하고 측정하는 능력이 국가의 과학 기술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가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1980년대 초반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길이 표준기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제조 기술과 전문 지식이 부족하여 정밀 스크류 제작이나 아이오딘 셀 밀봉 등 기초 공정부터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연구진은 도입된 초기 장비를 연구하며 기계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공진기 구조를 끊임없이 개선했습니다. 특히 미세한 오차를 줄이기 위해 회전 변형 구조를 도입하고 제어 회로를 최적화하며 기술력을 축적했습니다. 이러한 고군분투 끝에 탄생한 'KRISS LASER 2'는 대한민국이 국제 표준의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도약하는 역사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1991년 프랑스 국제도량형국(BIPM)에서 실시된 상호 비교를 통해 KRISS LASER 2는 그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입증받았습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표준기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절대 주파수 값을 결정받은 것은 대한민국 과학 기술의 독립을 상징하는 쾌거였습니다. 이 성과는 반도체 공정의 정밀 계측은 물론 광통신망 관리와 광부품 제조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국가 산업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과거 물리적 물체에 의존하던 시대를 지나 불변의 빛을 통해 우리만의 기준을 세운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정밀 측정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든든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KRISS 보물] 2화 ‘자’가 아닌 ‘빛'으로 길이를 잰다? 대한민국 길이 표준의 자부심, KRISS LAS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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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S 보물] 1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초석! 킬로그램 원기 39번

질량은 물질의 고유한 양으로, 장소와 상태에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닙니다. 인류는 100년 넘게 이 질량의 기준을 정의하기 위해 백금과 이리듐 합금으로 제작된 '국제 킬로그램 원기'라는 인공물을 사용해 왔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된 미터법은 초기에는 물의 부피를 기준으로 했으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금속 원기로 발전했습니다. 1889년 제1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채택된 이 원기는 전 세계 질량 측정의 유일한 표준이 되었습니다. 당시 40여 개의 복제품이 제작되어 각국에 배포되었는데, 그중 킬로그램 원기 39번은 대한민국 질량 표준 역사의 서막을 알리는 특별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킬로그램 원기 39번의 도입 과정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공식 기록상 킬로그램 원기 39번은 1894년 일본에 배포되었다가 해방 후인 1947년에야 한국으로 이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측 기록과 구전은 다른 이야기를 전합니다.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시절 일본을 통해 구입하여 보관하던 중, 일제 강점기 물자 동원령으로 일본에 빼앗겼던 것을 되찾아왔다는 주장입니다. 비록 현재로서는 일본의 공식 기록에 대응할 만한 추가 사료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킬로그램 원기 39번이 척박했던 대한민국 과학 기술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도입된 국가적 보물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킬로그램 원기 39번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6·25 전쟁과 같은 격동기를 거치며 원기 표면에는 수많은 상처가 남았고, 이는 정밀한 질량 측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원기는 극도로 미세한 무게 변화조차 허용하지 않는 극한의 정밀함을 요구하지만, 당시에는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전문가나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제 교정 시 질량 변화가 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1993년 새로운 원기인 킬로그램 원기 72번이 도입될 때까지 킬로그램 원기 39번은 국가 질량 표준을 확립하고 산업 발전을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그 소임을 다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영원할 것 같았던 인공물 원기의 시대를 마감하게 했습니다. 2018년, 킬로그램의 정의는 인공물에서 물리 상수인 '플랑크 상수'로 재정의되었습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보관해도 원기의 질량이 공기와의 반응이나 마모로 인해 미세하게 변한다는 점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특정 장소에 보관된 원기에 의존하지 않고, 전 세계 어디서나 보편적인 자연 법칙을 통해 질량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측정의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였으며, 우리나라도 독자적인 질량 표준 실현 장치인 키블 저울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기술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이제 킬로그램 원기 39번은 국가 표준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 역사적 가치는 여전히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선진국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수준에 머물렀으나, 이제는 자체 기술로 질량 표준을 세울 수 있는 측정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킬로그램 원기 39번은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표준조차 지키기 어려웠던 역사를 잊지 말라는 교훈을 주며, 한 나라의 표준이 곧 기술 수준과 자존심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과거의 고난을 딛고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은, 이 작은 금속 덩어리에 새겨진 흉터와 열정적인 연구자들의 땀방울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KRISS 보물] 1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초석! 킬로그램 원기 3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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