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곰팡이와 지의류가 만든 거대한 세계ㅣ김은영 역자[달작한사이언스_3월 : 작은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생물학자 멀린 셸드레이크의 저서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태계를 지탱하는 균류의 경이로운 세계를 조명합니다. 원제인 '얽혀 있는 삶(Entangled Life)'이 시사하듯, 균류는 땅속에서 식물 뿌리와 촘촘하게 얽혀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살아갑니다. 저자는 직접 균류의 열기를 느끼고 성분을 체험하며 이들의 분해력과 물질 생산 능력을 깊이 있게 연구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은 균류가 다른 유기체와 연합하여 어떻게 우리 지구의 생태계를 더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대비적인 시각으로 보여줍니다.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가 결합하여 탄생한 독특한 공생체로, 생물학의 오랜 정설을 깨뜨린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과거에는 단순한 이중 결합으로 여겨졌으나, 최근 DNA 분석을 통해 수많은 박테리아와 여러 균류가 섞인 복잡한 공동체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성질을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처럼 기능하며, 진화의 역사에서 식물이 육상으로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약 6억 년 전 녹조류가 균류를 만나 뿌리를 형성하고 식물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점은, 자연 선택이 단순히 개체 간의 경쟁만이 아니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균류는 땅속의 천재적인 네트워크 설계자이자 거대한 천연 컴퓨터와 같습니다. 수천 년을 살아온 뽕나무버섯의 균사는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으며, 수조 개의 접합점을 통해 영양분과 탄소를 주고받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균사들이 전기 신호를 통해 정보를 교환한다는 가설입니다. 마치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나 컴퓨터의 논리 회로처럼 작동하는 이 네트워크는 토양과 식물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생태계를 조율합니다. 우리가 이들이 주고받는 신호를 완벽히 해석할 수 있게 된다면, 지구 생태계가 품고 있는 방대한 정보의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균류의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여 극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남습니다. 지의류는 우주선 표면에 붙어 우주의 열악한 환경과 지구 재진입 시의 고온과 압력을 견뎌낼 만큼 강인하며, 완보동물(물곰)보다 수십 배 강한 방사능에서도 생존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에서는 방사능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번식하는 균류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적응력은 진화론이 강조해 온 적자생존의 경쟁 구도를 넘어, 서로 돕고 결합하는 방식이 얼마나 강력한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이는 우리가 지구 표면의 상당 부분을 덮고 있는 이 작은 생명체들로부터 배워야 할 지혜이기도 합니다. 균류는 곤충의 행동을 조종하거나 동물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정교한 생화학적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른바 '좀비 곰팡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개미나 매미의 뇌를 직접 파괴하지 않고도 특정 물질을 분비해 숙주가 포자를 퍼뜨리기 유리한 장소로 이동하도록 유도합니다. 한편, 인간에게 환각을 일으키는 버섯의 성분은 균류가 의도적으로 사람을 조종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복잡한 화학 물질을 인간이 특수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미세한 균류들이 분비하는 화학 신호는 생물권 전체의 행동과 의식을 연결하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거대한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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