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은 진화할 수 있을까? 인문학과 과학은 하나될 수 있을까?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교수가 밝히는 통섭의 현재와 미래|『통섭』 출간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2강|전중환
1998년 에드워드 윌슨이 제안한 '통섭'은 인문학적 질문에 과학적 통찰을 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한국어판 출간 이후 20년이 흐른 지금, 학계에서는 기존의 흐름을 계승하면서도 몇몇 오해를 바로잡는 '통섭 2.0'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학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복잡한 현상을 정교하게 규명하기 위해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기획입니다. 다윈이 도덕과 종교를 생물학적 이해의 틀에서 바라보려 했던 것처럼, 현대의 통섭 역시 인문학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더 깊은 인과적 설명을 제공하고자 노력합니다. 과학의 역사는 사실 서로 무관해 보이던 영역들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 온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뉴턴은 천상계와 지상계의 물리 법칙을 통합했고,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원리를 통해 물리적 세계와 목적의 세계를 통합했습니다. 현재 자연과학 내부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이 서로 정합적인 큰 그림을 그리며 이미 통합을 이룬 상태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입니다. 통섭은 인문학을 정복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지식의 모든 분야가 서로 소통하며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통섭의 새로운 흐름에서 강조하는 핵심 중 하나는 '좋은 환원주의'의 실천입니다. 흔히 환원주의를 부정적인 것으로 오해하지만, 진정한 설명은 어떤 현상을 한 단계 낮은 수준의 원리를 통해 풀어내는 과정을 포함해야 합니다. 단순히 현상을 묘사하거나 새로운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과학적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가족 문화를 단순히 특정 용어로 재정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인간이 그러한 심리적 경향을 갖게 되었는지 진화적 원리로 파고들 때 비로소 인과적 설명이 완성됩니다. 이는 현상의 풍부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을 밝히는 작업입니다. 문화와 생물학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뒷받침하는 보완적 관계입니다. 집단주의나 개인주의 같은 문화적 차이는 현상에 붙여진 이름일 뿐, 그 자체가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문화를 생성하는 인간의 심리적 적응이 왜 특정 방향으로 진화했는지 이해할 때 문화의 본질이 명확해집니다. 유전자와 문화가 함께 진화한다는 공진화 관점은 예술, 종교, 관습 등 인문학적 대상들이 어떻게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서 유래했는지 탐구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인문학적 통찰을 더욱 강력하고 폭넓은 설명의 그물망 안에 자리 잡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통섭의 가치는 구체적인 예술 및 문화 연구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SF나 판타지 장르에서 방대한 배경 설정인 '파라텍스트'가 발달하는 이유를 인간의 탐색 본능이라는 진화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과 문화가 결국 인간 두뇌의 산물임을 인정하고, 그 기저에 깔린 보편적 본성을 밝혀냄으로써 인문학적 연구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결국 통섭은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터널을 파고들어 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쌍방향 도로'와 같습니다.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협력할 때 비로소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