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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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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숭고할 수 있는가?|『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깊이 읽기 5편|이명현 × 이미영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단순한 식물학자를 넘어 인류의 식량 안보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입니다.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며 수만 종의 종자를 수집했으며, 1929년에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우리나라를 방문해 한반도 전역의 곡물 종자를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생물다양성 보존이라는 현대적 가치의 선구적인 토대가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식탁의 근간을 마련했습니다. 바빌로프의 이름은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가능한 세계'를 있게 한 헌신적인 과학자의 대명사로 기억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의 과학적 여정은 국가 권력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 리센코라는 인물이 정치적 권력을 등에 업고 과학을 왜곡하면서, 바빌로프의 유전학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념이 과학을 오염시킬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진화론 교육이 금지되거나 특정 이론이 정치적 이유로 배척받는 사례는 오늘날에도 반복될 수 있는 위험입니다. 권력이 과학적 진실을 가로막는 순간, 인류의 지성적 발전뿐만 아니라 생존 자체도 위태로워집니다. 많은 대중이 과학자를 실험실에 갇힌 기이한 인물로 오해하곤 하지만, 대다수의 과학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에 몰두하는 '연구 덕후'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동료들의 엄격한 검증을 거치며 객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과학자 집단 내에도 정치적 야망을 품거나 명예와 부를 좇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소수의 행보가 과학자 전체의 모습으로 왜곡되어 비춰질 때, 과학과 사회 사이의 건강한 관계는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권력의 입맛에 맞는 주장만을 내놓는 과학자들이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하게 되면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과거의 황우석 사태나 리센코의 사례처럼, 과학이 정치적 결탁과 만나면 국가 전체의 연구 지형이 흔들리고 진실은 외면받습니다. 최근에는 미디어에 노출된 셀럽 과학자들이 대중적 인기를 권력 삼아 과학의 보편성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대중이 과학적 업적과 대중적 인지도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바빌로프와 그의 동료들이 보여준 숭고함은 그들이 처했던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 빛을 발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레닌그라드가 포위되었을 때,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주변의 시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지키던 종자를 단 한 알도 먹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들 자신도 기아로 죽어가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종자를 지켜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더 소중히 여겼던 과학자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윤리 의식의 발현이었습니다. 이러한 과학자의 윤리는 타고난 인성만큼이나 철저한 훈련의 산물입니다. 기초 과학자들은 객관성을 유지하고 동료의 비판을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합리적이고 리버럴한 사고방식을 체득합니다. 직업적 특성에서 기인한 이러한 태도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교육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인류가 마땅히 지켜야 할 가치와 윤리적 기준을 세우는 일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앤 드루얀이 바빌로프의 삶을 조명한 이유는 과거의 희생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찾기 위함입니다.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 선 우리에게 바빌로프의 정신은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미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류를 위한 가치를 지켜낸 경험을 유전자 속에 품고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와 성공의 기록인 과학사를 되짚어보는 일은 우리가 처한 난제들을 기술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동력이 됩니다. 미래의 가능한 세계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각성에서 시작됩니다.

과학자는 숭고할 수 있는가?|『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깊이 읽기 5편|이명현 × 이미영
(주)사이언스북스칼 세이건 살롱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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