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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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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빈 서판이 아니다|『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강연|전중환

인류의 역사는 흔히 끊이지 않는 전쟁과 잔혹한 폭력의 연대기로 기억되곤 합니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방대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인류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이러한 폭력의 감소는 인간의 본성이 갑자기 선하게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잠재된 '선한 천사'가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외부적 환경이 역사적으로 조성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감소를 이끈 첫 번째 중요한 동력은 국가라는 강력한 통제 기구, 즉 '리바이어던'의 등장입니다. 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의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개인 간의 복수와 자원 쟁탈이 일상적이었으며, 전체 사망자 중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비율이 현대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중앙집권화된 정부가 폭력을 독점하고 법적 처벌을 확립하면서 사람들은 보복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평화적인 공존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구조의 변화 또한 평화의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습니다. 과거에는 땅과 같은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제로섬 게임'이 폭력을 정당화했지만, 상업이 발달하면서 타인의 번영이 곧 나의 이득으로 이어지는 '포지티브 섬 게임'이 가능해졌습니다. 서로 물건을 교환하고 협력하는 것이 상대를 죽여 자원을 뺏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경제적 논리는 인류가 서로를 적대시하기보다 공생의 파트너로 바라보게 만드는 지렛대 역할을 했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일어난 인도주의 혁명은 폭력에 대한 인류의 도덕적 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쇄술의 발달과 문해율의 향상은 사람들이 소설과 기사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코즈모폴리턴'적 시각을 갖게 했습니다.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법적 고문, 노예제, 미신에 근거한 마녀사냥 등이 이 시기를 거치며 비인도적인 행위로 규정되었고, 이는 현대 인권 의식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단순히 선하거나 악하게 태어나는 빈 서판이 아닙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마음 안에는 자원 확보를 위한 도구적 폭력, 복수심, 우세 경쟁과 같은 '내면의 악마'가 존재합니다. 동시에 감정 이입, 자기 통제, 도덕감, 이성이라는 '선한 천사'도 공존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본성이 발현될 것인가이며, 현대 문명은 법치와 교육, 기술 발전을 통해 우리 안의 내면의 악마를 잠재우고 선한 천사를 일깨우는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해 왔습니다. 흔히 20세기를 가장 잔혹한 전쟁의 시대로 기억하지만, 인구 대비 사망자 비율로 따져보면 안록산의 난과 같은 과거의 분쟁들이 훨씬 치명적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 간의 직접적인 충돌이 사라진 '긴 평화'와 냉전 종식 이후의 '새로운 평화'는 인류가 조직적인 폭력을 제어하는 데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테러나 국지적 분쟁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는 평화로 향하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예외적인 현상에 가깝습니다. 결론적으로 인류가 걸어온 평화의 길은 우연이 아닌 이성과 공감의 승리입니다. 여성의 권리 신장, 아동 보호, 소수자 인권 존중과 같은 '권리 혁명'은 공감의 범위가 가족과 부족을 넘어 전 인류와 생명체로 확장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폭력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역사의 데이터를 신뢰한다면 인류가 구축해 온 제도와 이성이 앞으로도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더욱 밝게 빛나게 할 것임을 낙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빈 서판이 아니다|『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강연|전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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