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전길남 KAIST 박사
한국 과학기술 발전의 초석을 다지던 시기, 전자기술연구소와 KIST 사이의 미묘한 경쟁과 협력 속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들이 싹텄습니다. 당시 전화교환기 개발과 같은 국가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경상현 박사와 같은 선구자들은 구체적인 프로젝트의 성격보다는 연구자 개인의 역량을 신뢰하며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이는 기술적 이해가 부족했던 당시 상황에서 연구자가 소신껏 도전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학문적 배경이 깊은 동료들의 지지와 원조는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핵심적인 원동력이었습니다. 1980년대 정부의 주된 목표는 반도체와 컴퓨터의 국산화를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 국산화는 성공할 경우 세계에서 열 번째 정도의 순위에 오를 수 있는 중요한 상업적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 2위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젊은 연구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비록 가용 인력과 자원이 컴퓨터 개발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인터넷 프로젝트를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5위보다는 세계 2위라는 상징적인 목표가 주는 에너지는 연구진이 불가능해 보이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도록 이끄는 강력한 동인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개발의 성공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끈질긴 도전 정신의 산물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생들과 함께 구미 전자기술연구소를 연결하며, 마침내 해외 컴퓨터에 로그인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미국 UCLA에 이어 세계 2위로 이뤄낸 쾌거였으며, 연구자들이 밤낮없이 몰두한 끝에 얻은 결실이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성과는 연구실 안에서의 지식 탐구에만 머물지 않고, 유럽의 험난한 북벽을 등반하는 것과 같은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미친 듯이 몰입하고 끝까지 완수해내는 태도는 과학자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자 성공의 열쇠였습니다. 우수한 인재 양성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KAIST를 비롯한 국내 연구진은 MIT나 스탠퍼드와 경쟁하기 위해 학생들을 해외로 보내고 실력을 검증받게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전 세계 50여 개국에 인터넷을 보급하고 상용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국제적인 리더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10여 개의 국제 기구를 결성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은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음을 증명합니다.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극한의 집중력은 연구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한 토대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인터넷 혁명처럼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연구 기관의 철저한 국제화가 필수적입니다. 우수한 외국인 연구자들이 유입되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독보적인 기술력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80세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선구자의 정신은 오늘날의 젊은 과학자들에게도 큰 귀감이 됩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국제적인 협력만이 다음 50년의 미래를 밝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