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요약
오늘날 우리 주방의 냉장고에 귀를 기울이면 아주 작은 '윙'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냉매를 압축하기 위해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로, 전기 냉장고를 사용하는 한 피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약 100년 전 유럽과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는 이런 소음이 전혀 없는 냉장고가 있었습니다. 바로 가스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가스 냉장고였습니다. 당시 가스 냉장고는 이미 널리 보급된 가스등 인프라 덕분에 매우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가전제품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초창기 전기 냉장고가 등장했을 때,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굳이 전기 냉장고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전기 냉장고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소음이 심해 주방이 아닌 지하실에 두어야 할 정도였으며, 가격 또한 매우 비쌌습니다. 반면 가스 냉장고는 조용하고 안전했으며 추가적인 전기 가설 비용도 들지 않았습니다. 인프라 측면에서도 가스등이 도시를 밝히던 시절이었기에 가스 냉장고의 효율성과 접근성은 전기 냉장고보다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전기 냉장고로 넘어갔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제너럴 일렉트릭(GE)과 같은 거대 기업의 전략이 있었습니다. 이들 대기업은 단순히 냉장고 하나를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가정에 전기선을 깔아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등 모든 가전을 전기로 바꾸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가스 냉장고는 그들의 전기 생태계 확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기에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대기업은 자본과 권력을 동원해 가스 냉장고를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광고를 통해 가스 냉장고가 위험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가 하면, 확인되지 않은 사고 기사를 유포하여 소비자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당시 금융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대기업들은 가스 냉장고를 생산하던 중소기업들의 대출을 압박했습니다. 자금줄이 막힌 중소기업들은 연구 개발은커녕 공장 운영조차 어려워졌고, 결국 시장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과학기술은 우리 삶에 기여하도록 자연스럽게 발전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학 관계 같은 정치·경제·사회적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우월한 것이 열등한 것을 대체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가스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가스레인지로 요리를 하는 것은 가스가 가진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100년 전의 '냉장고 전쟁'에서 가스 냉장고가 살아남았다면, 우리 주방에는 소음 없는 세련된 가스 냉장고가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과학기술의 역사는 때로 효율성이나 합리성보다 기업의 이윤과 사회적 역학 관계에 의해 결정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