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요약
전통적인 의약 화학에서는 약물을 열쇠로, 표적 단백질을 자물쇠로 비유하는 '키-앤-락(Key-and-lock)' 모델을 주로 활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질병과 관련된 많은 단백질은 약물이 결합할 만한 깊은 소수성 주머니가 없는 소위 '언드러거블(Undruggable)'한 특성을 보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주목받는 것이 거대고리 화합물입니다. 13각형 이상의 큰 고리 구조를 가진 이 화합물들은 기존의 저분자 화합물과 거대 분자인 생물학적 제제 사이의 중간 영역을 메우며, 단백질 간의 상호 작용이나 구조가 불분명한 표적을 공략하는 데 효과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거대고리 화합물은 비교적 유연한 골격을 가지면서도 미리 조직화된 구조를 통해 표적 단백질과의 상호 작용에서 엔트로피적인 이점을 제공합니다.
거대고리 화합물의 생물학적 연관성을 높이기 위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피리타이드(Pyritides)의 구조적 모티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리타이드는 피리딘과 티아졸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가진 천연물군으로, 다양한 생리 활성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천연물의 특징을 차용하여 '다양성 지향 합성(DOS)' 전략을 적용하면, 효율적이면서도 확장성이 높은 거대고리 라이브러리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빌드(Build), 커플(Couple), 페어(Pair)로 이어지는 BCP 전략은 모듈화된 방식을 통해 단순한 구조로부터 폭발적인 구조적 다양성을 창출하는 데 매우 유리합니다.
합성 과정은 티아졸이 결합된 바이피리딘, 카이랄 사이클릭 트라이아민, 아미노산이라는 세 가지 핵심 빌딩 블록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이들을 순차적으로 연결하여 선형 전구체를 합성한 뒤, 구리 촉매를 이용한 클릭 화학 반응을 통해 최종적인 거대고리 구조를 형성합니다. 연구 과정에서 고리화 반응의 속도가 연결 부위의 위치(오르토, 메타, 파라)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반응 속도가 느려 합성이 어려운 경우에는 탄소 사슬을 연장하여 구조적 긴장도를 완화함으로써 성공적으로 화합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구축된 거대고리 라이브러리는 계산 화학적 분석을 통해 그 가치가 증명되었습니다. 타니모토 유사도 분석 결과, 유사한 빌딩 블록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높은 구조적 다양성을 확보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관성 주모멘트(PMI) 분석을 통해 천연 피리타이드보다 더 넓은 구조적 영역을 커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주요 성분 분석(PCA) 결과는 합성된 화합물들이 승인된 약물들과 유사한 물리화학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신약 후보 물질로서의 높은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이러한 플랫폼의 실질적인 효용성은 페롭토시스(Ferroptosis) 저해제 발굴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페롭토시스는 철 이온에 의존적인 지질 과산화로 발생하는 세포 사멸의 일종으로, 퇴행성 뇌 질환이나 당뇨병 등 다양한 질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스크리닝을 통해 발견된 '6PW' 화합물은 농도 의존적으로 지질 과산화를 억제하여 세포 사멸을 막아주는 탁월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구조-활성 상관관계(SAR) 분석을 통해 백본의 긴장도와 특정 아미노산 작용기가 활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하며 거대고리 화합물의 신약 개발 가능성을 확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