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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이야기] 2화 조선시대 도량형의 원기 ‘세종대왕의 황종척’

한국표준과학연구원단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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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요약

우리나라 역사 속에는 생활의 지혜가 담긴 다양한 단위들이 존재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말'이나 '척', '리'와 같은 단위들은 고대부터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삼국사기와 같은 고대 문헌에 따르면 보, 리, 장, 척 등 길이 단위와 섬, 되 같은 부피 단위, 그리고 근과 푼 같은 무게 단위가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도 주척이라는 기준이 있었으나,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도량형 정비는 조선 시대 세종대왕 대에 이르러 비로소 그 기틀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조선의 모든 제도를 바로잡고자 노력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와 각종 과학 기구 발명은 물론, 농업과 상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량형의 통일을 추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도량형 제도의 정비가 음악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음악은 국가의 의례와 질서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였기에, 정확한 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곧 국가의 표준을 세우는 일과 직결되었습니다. 세종은 박연과 함께 조선만의 독자적인 음률 기준인 '황종음'을 정립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황종음은 본래 천자의 음이라 하여 중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라 여겨졌지만, 세종대왕은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기준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황종음의 기준이 되는 관의 길이를 정하여 원기로 삼은 것이 바로 '황종척'입니다. 박연은 황해도 해주산 기장 90알을 나란히 쌓아 그 길이에 1촌을 더함으로써 황종척 한 척의 길이를 확립했습니다. 기장이라는 곡물을 기준으로 삼은 이 방식은 자연에서 얻은 보편적인 수치를 활용한 지혜였습니다. 악학궤범에 따르면 황종관은 일정한 부피와 길이를 가졌으며, 이는 단순한 악기의 기준을 넘어 조선의 모든 물리적 수치를 정의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은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표준을 갖게 되었습니다.

황종척으로 만들어진 황종관은 소리의 기준일 뿐만 아니라 부피와 무게를 재는 핵심적인 척도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기장 1,200알이 들어가는 황종관에 물을 채워 그 무게를 기준으로 푼, 전, 냥, 근과 같은 무게 단위를 정의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부피 단위인 말과 섬 역시 황종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현재 유물을 통해 추정되는 황종척의 길이는 약 34.48cm이며, 세종대왕은 이를 바탕으로 주척, 영조척, 조례기척 등 용도에 맞는 다양한 자를 제작하여 국가 전반의 측정 정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도량형의 통일은 단순히 수치를 맞추는 작업을 넘어 국가 운영의 근간을 세우는 혁신이었습니다. 정확한 토지 측량과 공정한 조세 제도의 재정비가 가능해짐에 따라 백성들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안정될 수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황종척을 통해 완성한 도량형 제도는 음악과 과학, 경제와 건축을 아우르는 융합적 사고의 산물이었습니다. 표준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진리를 실천한 이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줍니다. 다음에는 암행어사의 상징이자 엄격한 기준자였던 '유척'을 통해 측정의 역사를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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