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요약
1970년대 대한민국은 전화 한 회선을 구하기 위해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할 정도로 통신 불모지였습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ETRI는 벨기에와 미국의 기술을 습득하며 한국형 전전자 교환기(TDX) 개발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마침내 개발된 TDX-1과 TDX-10은 농어촌과 대도시를 잇는 국가 통신망의 중추가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인들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없다는 외부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대한민국이 통신 강국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선 전화의 보급이 완료될 무렵, 사람들은 손안의 전화기인 이동통신을 열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날로그 방식은 품질이 낮고 비용이 비쌌기에 ETRI는 미국의 퀄컴과 손잡고 CDMA 방식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상용화 의지를 보이지 않던 기술이었지만, 한국 연구진은 TDX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을 습득하고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1996년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라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이는 우리 기술로 만든 통신 시스템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서막이 되었습니다.
미국 퀄컴 부사장이 ETRI를 방문했을 때, 연구소에서 성공시킨 CDMA 방식으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 품질을 확인하고는 축하의 악수를 청하던 그 순간의 뿌듯함은 잊을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만 사용 가능했던 CDMA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은 세계 단일 표준인 WCDMA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과거 퀄컴에 기술료를 지불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원천 기술을 국제 표준에 삽입함으로써 기술료를 받는 국가로 탈바꿈했습니다. 특히 거대 기업인 애플을 상대로 당당히 기술료 협상을 벌여 수백억 원의 기술료(로열티)를 받아낸 성과는 한국 통신 기술의 위상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로밍 시대를 열었습니다.
4G 시대로의 전환기에는 CDMA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히 OFDM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한국의 결정에 세계가 주목하며 따라올 만큼, 대한민국의 위상은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은 단순히 장비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 국민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고 언제 어디서나 대용량 데이터를 소비하는 일상은 연구원들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빚어낸 소중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의 통신은 단순한 영상이나 음성 전달을 넘어 인간의 감정까지 소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이제는 정보통신기술(ICT)이 인프라를 넘어 세상을 연결하는 만능 도구가 되는 시대입니다. 은퇴한 과학자는 후배들에게 지식을 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장 실천하는 선구자가 되어줄 것을 당부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통해 성취감을 맛보고 묵묵히 정진하다 보면 어느덧 세계 최고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구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자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