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요약
ETRI에서 24년 동안 근무하며 정보통신기술의 변천사를 함께해온 한 연구자의 회고는 우리 ICT 발전의 궤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특히 1990년대 초 싱글미디어 시대에서 멀티미디어 시대로 넘어가는 격변기에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 불렸던 B-ISDN 과제를 기획하고 성공시킨 경험은 매우 값진 성과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65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구축한 기술적 토대는 대한민국이 IT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후대 연구자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ETRI 원장으로서의 여정은 단순히 연구를 넘어 연구소의 자립과 혁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WCDMA 기술료 소송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로열티를 확보하고, 당시로는 생소했던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여 연구 성과의 사업화를 본격화한 시도는 혁신적이었습니다. 또한 융합기술연구생산센터를 건축하여 연구 단지의 랜드마크를 조성함으로써 기술이 연구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과 맞닿을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도전은 ETRI가 단순한 연구 기관을 넘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거점으로 성장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성공적인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미래 기술의 향방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것이 시장에서 실질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면밀히 따져보는 목표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는 선진 기술을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 리더십을 확보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앞선 기술력을 갖추는 것을 넘어, 미래의 필요를 예측하고 시장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세 축의 방정식을 풀어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국민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기술을 발굴하고 이를 국가 지능화의 중심에서 실천해 나간다면, 우리 기술은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더 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명확한 목표 설정과 실행력이 뒷받침된다면 미래 기술 패권 경쟁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연구 환경의 큰 과제 중 하나는 연구원들이 연구 본연의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연구원의 순수 연구 투입 시간이 37% 수준에 불과한데, 이는 프로젝트 규모가 커질수록 행정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적 문제 때문입니다. 이미 70년 전부터 연구행정의 체계화를 시작한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전문적인 연구행정직을 양성하고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행정과 연구가 조화를 이루는 효율적인 시스템이 구축될 때 비로소 연구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혁신적인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가 마련될 것입니다.
복잡해지는 현대 기술 사회에서 개별 조직의 연구에만 매몰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다양한 분야의 협력이야말로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각기 다른 기술 영역이 서로 소통하고 머리를 맞댈 때 비로소 융합의 시너지가 발생하고 예상치 못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열정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협력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우리가 꿈꾸는 기술적 성취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 정신이 우리 과학기술계에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