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잊혀진조상의그림자

6 Contents
최신순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8편|이명현 × 이미영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저서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를 통해 인류의 기원과 본성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특히 종교적 성향을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보지 않고, 동물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진화심리학적 현상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신앙이나 체제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의 사회적 패턴에서 기원한 것이며, 이러한 진화론적 뿌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인류가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성찰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흔히 문명을 인간을 규정하는 핵심 특징으로 꼽지만,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전체 기간 중 99%는 문명 없이 보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문명은 진화의 긴 과정에서 아주 최근에 발생한 단계일 뿐이며, 이를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불공평할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동물들 사이에서도 문명과 유사한 행동 양식이 발견되는 만큼, 인간의 문명은 다른 종과의 본질적인 차이라기보다는 발달 정도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도구의 사용이나 지능의 수준에 있어서도 인간과 영장류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전적 유사성을 고려할 때, 외계생물학자의 눈에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커다란 흐름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만이 특별한 보루를 가졌다고 고집하기보다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유산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기록과 교육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전수하는 아카이브 능력 정도가 인간을 조금 더 구별 짓는 특징일 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매우 이성적인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뇌가 만든 모델을 통해 세상을 왜곡해서 바라보기도 합니다. 돌고래와 같은 다른 지적 생명체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완전히 알 수 없듯이, 인간의 이성 역시 우주적 관점에서는 물질적 존재로서 가지는 근원적인 한계를 지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순수하게 이성적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만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으며, 내면에 잠재된 동물적 본능과의 조화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동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고립된 존재로 정의해 왔습니다. 내면의 폭력성이나 이기심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본성이 아닌 것처럼 외면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우리의 본성을 숨기고 자기 회의를 회피하려는 행위 자체입니다. ‘인간적이다’라는 표현이 때로는 실수나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에 쓰이듯이, 우리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동물적 본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받아들여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자신의 부모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비로소 어른이 되듯이, 인류 역시 조상들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할 때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동물의 친척임을 인정하는 것은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과 우주로부터 소외되었던 인간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자기 객관화는 인류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과거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여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지능이라는 도구가 인류의 유일한 칼날이라면, 우리는 이제 그것을 날카롭게 갈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칼 세이건은 인류를 ‘천애 고아’에서 ‘기술적 사춘기’로 넘어가는 단계로 정의하며, 우리의 선택이 후손들의 안전과 직결됨을 강조합니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국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고 번영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며, 이는 곧 우주적 존재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길입니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8편|이명현 × 이미영
(주)사이언스북스칼 세이건 살롱 2021
  • 생명과학
  • 지구환경과학
  • 천문학
  • 뇌인지과학
  • 융합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정말로 다를까?|『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7편|이명현 × 이미영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며 다른 동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믿음을 고수해 왔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이러한 독보적 지위는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칼 세이건은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를 통해 세포의 진화부터 영장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지나온 여정을 살피며 인간의 정의를 새롭게 묻습니다. 특히 영장류의 특성이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행동과 겹쳐지는 지점을 조명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독립적인 존재인지 아니면 진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놓인 한 조각인지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합니다. 동물 행동학자들은 동물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 시도하지만, 이에 대해 아이젠크와 같은 학자들은 강한 비판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는 동물의 행동을 인간과 유추하여 설명하는 방식이 피상적이며 대중적으로 과장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성과는 발견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논쟁과 검증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특정 실험 조건에서의 결과가 보편성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며, 과학자들 역시 각자의 연구 범위 안에서 현상을 판단하기 때문에 때로는 모순된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칼 세이건은 논쟁적인 사안을 다룰 때 결코 한쪽의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밝기에 앞서 반대되는 주장과 모든 팩트의 가능성을 집요할 정도로 꼼꼼하게 검토합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때로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객관성을 확보하고 비판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까지 설득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객관적으로 자료를 나열한 뒤,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줍니다. 영장류의 세계에서 관찰되는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새로운 지식의 수용 방식입니다. 암컷 원숭이가 모래 섞인 밀을 물에 씻어 먹는 효율적인 방식을 발명했을 때, 어린 개체들과 다른 암컷들은 이를 즉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서열이 높은 수컷들은 자신의 지배적 지위가 흔들릴 것을 우려해 끝까지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를 거부하며 모래를 씹는 길을 선택하곤 합니다. 이러한 자존심과 위계에 대한 집착은 인간 사회의 가부장적인 구도와도 묘하게 닮아 있으며, 수컷의 폭력성보다는 교묘하게 설계된 신화와 세뇌를 통해 체제가 유지되어 왔음을 시사합니다.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하려는 시도는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을 털 없는 이족 보행 동물로 정의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적 동물이라 일컬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이러한 정의들은 쉽게 무너집니다. 털이 없는 특성은 영장류 간의 정도 차이일 뿐이며, 개미나 꿀벌의 사회성은 인간의 그것을 능가하기도 합니다.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교역이나 교환 또한 보노보의 평화로운 상호작용에서 발견되는 등, 우리가 우리만의 고유한 자산이라고 믿었던 특성들이 사실은 자연계에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지적 특성과 문화의 영역에서도 인간의 독점권은 위태롭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거나 과거를 회상하는 능력은 많은 동물에게서 본능적인 조절 기제로 나타납니다. 죽은 동료를 기리는 듯한 의식이나 고유의 놀이 문화는 고래나 침팬지 집단에서도 관찰되며,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언어 또한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성대의 발달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소통의 본질적 기능은 자연계 곳곳에 존재합니다. 결국 우리가 고수해온 인간다움의 조건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연속적인 선상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 멸종하더라도 다른 영장류가 그 자리를 대체하여 새로운 문명을 세울 것이라 상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생태학적으로 인간과 유인원들은 밀접하게 연결된 공동 운명체에 가깝습니다. 대멸종의 역사에서 자원을 독점하던 지배종이 가장 먼저 사라졌듯이, 환경 변화가 닥치면 인간과 유사한 생존 조건을 공유하는 영장류들 역시 무사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을 특별하게 정의하려던 수많은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러한 깨달음은 오히려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정말로 다를까?|『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7편|이명현 × 이미영
(주)사이언스북스칼 세이건 살롱 2021
  • 생명과학
  • 뇌인지과학

유인원과 인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6편|이명현 × 이미영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공저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며 우리 내면에 숨겨진 본성을 탐구합니다. 특히 14장은 독특하게도 SF 소설이나 콩트 같은 형식을 빌려 유인원의 시각에서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이는 단순히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진화론적 공통점 아래에 있는 인간 특유의 폭력성과 도구 사용 능력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침팬지의 공격성과 잔인함을 통해 인간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발견하며,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라고 믿었던 목록들을 하나씩 재검토하게 됩니다. 침팬지 무리의 '빅 가이'로 상징되는 우두머리의 지배와 복종 관계는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를 떠올리게 합니다. 강한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기묘한 안도감, 그리고 타 집단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성은 진화의 긴 여정 동안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새끼를 지키려는 암컷의 강한 모성애와 그들 사이의 유대감은 생존을 위한 또 다른 핵심 전략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유인원의 사회적 역학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인간 본성의 뿌리를 깊이 파헤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다윈은 일찍이 개코원숭이를 이해하는 것이 철학자 존 로크의 형이상학보다 인류의 기원 입증에 더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제인 구달이나 프란스 드 발과 같은 과학자들의 헌신적인 연구는 이러한 통찰을 실증적인 자료로 뒷받침했습니다. 유인원을 우리와 분리된 존재가 아닌, 공동 조상을 공유하는 근연종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인간 보편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영장류의 모습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 고도화된 지성과 언어라는 보호막 뒤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침팬지와 공유하는 유전적 경향성이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침팬지는 우리의 조상이 아니지만 매우 가까운 친척으로서 본능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규칙에 옭아매인 평소의 모습에서 잠시 벗어나 가상의 공간에서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면, 세련된 형식 아래 요동치는 원초적 욕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물학적 본성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필수적인 첫걸음이 됩니다. 침팬지 사회에서도 집단 간 전쟁과 말살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인류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공격성이 유전적 본능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이를 은폐하기보다는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본능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사회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태풍의 경로를 예측하여 대비하듯, 우리 내면의 폭력적인 경향성을 정확히 인지함으로써 이를 어떻게 통제하고 완화할 것인지에 대한 지성적인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인간의 사회 구조는 유전적 형질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의 정치적 지위가 높고 사회적 평등이 실현된 문화권에서는 폭력적인 범죄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유전적 경향성이 존재하더라도 우리가 어떤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느냐에 따라 특정 형질은 억제되고 긍정적인 가치는 장려될 수 있습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문명적 노력은, 우리가 진화의 굴레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임을 증명합니다. 인류는 이제 단순한 생존을 넘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과거의 관습이나 본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정과 정서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해야 할 시점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이 유도하는 공격성을 지혜롭게 다스리고,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게 주어진 숭고한 진화론적 도전입니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를 직시하면서도 그 그림자를 딛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야말로 과학이 우리 인류에게 주는 가장 큰 위안이자 희망일 것입니다.

유인원과 인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6편|이명현 × 이미영
(주)사이언스북스칼 세이건 살롱 2021
  • 생명과학

성과 죽음이 존재하는 이유|『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4편|이명현 × 이미영

생물학적 관점에서 성의 등장은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생명의 역사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무성 생식은 자기 복제를 통한 완벽한 효율성을 자랑했지만, 유성 생식은 막대한 에너지와 비용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생태계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체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 복잡한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진화의 전략이었습니다. 성은 단순한 생식 행위를 넘어 개성과 인격을 형성하고 다채로운 생명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유성 생식의 가장 큰 이득은 바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하는 다양성 확보에 있습니다. 부모와 똑같은 복제본을 만드는 무성 생식은 환경이 급변할 때 종 전체가 멸종할 위험이 크지만, 유성 생식은 유전자를 섞어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냅니다. 부모를 닮으면서도 전혀 새로운 개체가 태어나는 과정은 일종의 도박과 같지만, 바로 그 다양성 덕분에 생명은 혹독한 기후 변화나 질병의 위협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성은 나와 너를 구분 짓고, 사랑과 구애뿐만 아니라 혐오와 차별이라는 복잡한 감정의 뿌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는 경계는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외계 생물학자에게 인간은 그저 결함을 감추고 약점을 변명하기 위해 언어라는 홍보 수단을 과도하게 발달시킨 자동기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만이 고유한 사고와 감정을 지녔다고 자부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그 많은 행동이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된 본능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라 여겼던 도구 사용이나 소통 방식조차 다른 영장류와 비교했을 때 절대적인 차이가 아닌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인간의 특별함은 시간을 인식하고 미래를 끌어당겨 생각하는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단순히 현재의 찰나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에 닥칠 위협을 미리 대비하거나 변명하는 능력을 언어를 통해 구현해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교한 언어 능력과 사고력조차 사실은 생존을 위해 발달한 생물학적 도구에 가깝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복잡한 논리를 세우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사실 유구한 진화의 세월 동안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 전략이 현대적인 형태로 발현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탄생 과정을 들여다보면 격렬한 경쟁과 완벽한 협력이라는 모순된 두 요소가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억 개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를 향해 달리는 과정은 치열한 경쟁처럼 보이지만, 거시적으로는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세포들의 거대한 협업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상반되는 본성은 인간 사회의 구조와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그대로 투영됩니다. 우리는 타인을 적으로 간주하여 경쟁하는 동시에, 공동의 목표를 위해 자신의 독자성을 포기하고 협력하는 기묘한 양면성을 지닌 존재로 진화해온 것입니다. 공격성 또한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 중 하나로 진화 과정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공격성은 무작정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고 종을 보존하기 위해 각인된 본능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공격성이 동정심, 이타주의, 새끼 돌보기와 같은 따뜻한 특성들과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진화는 공격성을 촉발하는 장치와 억제하는 장치를 동시에 마련함으로써 생물계가 혼란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 갈등은 바로 이러한 진화적 유산의 산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내재된 본능이 곧 도덕적 올바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우리의 공격성이나 본능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함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본능에만 충실한 행동은 도태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자연스러운 본성과 문명인으로서의 미덕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과거의 본능을 자각하고 현대적 삶의 전략을 세우는 지혜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의 경계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만드는 진정한 힘이 됩니다.

성과 죽음이 존재하는 이유|『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4편|이명현 × 이미영
(주)사이언스북스칼 세이건 살롱 2021
  • 생명과학
  • 뇌인지과학

불이 처음 타올랐을 때|『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3편|이명현 × 이미영

약 35억 년 전, 초기 생명체가 세포막을 형성하여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기 시작한 사건은 자아의식의 가장 원초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물의 출입을 조절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 생물학적 막은 '나와 너'를 가르는 경계가 되었습니다. 흔히 정체성이나 자아는 고등 생명체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 근간은 생존을 위해 타자와 자신을 구별해야 했던 단세포 생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생물학적 정체성의 탄생은 곧 집단의 형성과 생존을 위한 차별화로 이어졌습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생명체 간의 포식과 피식 관계는 단순한 대립을 넘어선 조화로운 생존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잡아먹으려던 대상이 미토콘드리아처럼 세포 내로 들어와 공생 관계를 맺고 에너지를 생성하게 된 과정은 매우 정교하고 전략적입니다. 이러한 초기 생명체들의 상호작용은 훗날 인간이 보여주는 이타성과 협력, 혹은 배신과 같은 복잡한 사회적 본성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낮은 단계의 생명 현상 속에도 우리가 인간답다고 믿는 성질들의 단초가 이미 내재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지구 대기에 산소가 가득해진 사건은 생명 역사에서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사실 산소는 강력한 반응성 때문에 초기 생명체들에게는 치명적인 독성과 같았습니다. 많은 종이 멸종하거나 산소가 없는 곳으로 숨어들었지만, 이 혹독한 환경에 적응한 생명체들은 대기를 이용해 폭발적인 에너지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생명 활동은 이 위험한 기체에 적응한 결과물입니다. 산소의 독성에 적응한 생명체들이 표면을 장악하며 지구는 전례 없는 생명력의 장이 되었습니다. 불은 태양계 행성 중 오직 지구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현상으로, 풍부한 산소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인류는 이 불을 다스리며 문명의 도화선을 당겼습니다. 특히 음식을 익혀 먹는 화식은 소화에 드는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여주었고, 절약된 에너지가 뇌 발달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불을 통한 보호와 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생태계의 우위를 점하게 만든 핵심적인 동력이었으며, 사냥한 뒤 불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경험은 인류 문화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우주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모든 생명은 유전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집단 지성체와 같습니다. 탄소와 산소를 기반으로 한 생명 현상은 지구만의 우연을 넘어, 화학적 보편성을 지닌 우주의 질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칼 세이건이 강조했듯, 우리가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면서도 동시에 자연의 일부임을 잊지 않는 태도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이러한 통합적인 시각은 우리가 생명을 바라보는 지평을 우주 전체로 확장해 줍니다.

불이 처음 타올랐을 때|『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3편|이명현 × 이미영
(주)사이언스북스칼 세이건 살롱 2021
  • 생명과학
  • 지구환경과학
  • 융합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 대하여|『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0편|이명현 × 이미영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특별한 작품입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코스모스』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거시적인 지침서였다면, 이 책은 생명의 탄생부터 인류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그 내밀한 역사를 추적합니다. 특히 진화론의 발전 과정과 유전의 기본 원리를 짚어내며, 인류가 지닌 폭력성과 이타성이라는 양면적 본성의 뿌리를 깊이 있게 파고듭니다. 앤 드루얀은 이 책의 한국어판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며, 과거에 기반을 두지 않은 현재는 없다는 철학을 강조했습니다. 이 책의 집필 배경에는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경쟁 속에서 느꼈던 인류 멸망에 대한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앤 드루얀은 인류를 깊이 이해하고자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폭력성을 직시하는 동시에, 서로 돕고 협력하는 이타성의 존재를 확인하려 노력했습니다. 2008년 그녀가 방한했을 당시에도 칼 세이건과의 사적인 추억과 함께 과학적 맥락에 대한 깊은 교감이 이루어졌습니다. 저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인류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내면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책의 시작을 장식하는 헌사에는 우주 생물학자이자 의사인 레스터 그린스푼이 등장합니다. 그는 칼 세이건 부부에게 약물이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영향, 즉 우리의 의식이 호르몬이라는 생화학적 작용의 산물임을 깨닫게 해준 인물입니다. 이는 인간의 정신세계 역시 물리적인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점이 됩니다. 영혼이나 의식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과학의 창을 통해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온 생물학적 유산의 실체를 명확히 마주하게 됩니다. 『오디세이아』의 인용구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가 믿어온 영혼과 몸의 이원론적 실체에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의 신화와 문학이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지혜였다면, 이제는 과학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그 이면의 원리를 탐구할 때입니다. 인류가 대대로 믿어온 간절한 소망과 상징적인 믿음들은 때때로 진실을 가리는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확신해온 과거의 유산들을 전복하고, 생물학적 진화사라는 객관적 사실 위에서 인간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합니다. 이는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정직한 성찰입니다. 인류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은 일종의 '올가미'와 같습니다. 동물로부터 진화하며 축적된 본능과 수렵 채집 시절에 적합했던 특성들이 21세기 현대 사회의 환경과 충돌하며 모순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우리를 보호해주던 방패막이가 이제는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된 셈입니다. 이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득한 과거로 돌아가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과거에 기반을 두지 않은 현재가 없기에, 인간 본성의 진화론적 특성을 하나하나 따져보는 과정은 문명사적으로 매우 필수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의 제목인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1964년 소련의 영화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랑과 질투, 음모 등 인간의 원초적 본성을 다루며 당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억압에 저항했습니다. 앤 드루얀은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체제의 이데올로기보다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낭만적이고도 퇴폐적인 인간의 모습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조상의 그림자와 닮아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적 감수성은 과학적 탐구와 결합하여 인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인류에 대한 깊은 회의와 불신에서 집필을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인류를 향한 애틋한 시선으로 탐구를 마칩니다. 비록 조상들의 폭력성과 어두운 본능을 마주하는 과정이 괴롭더라도, 그들은 이 탐구 여행에서 절대 되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들은 과학이라는 창을 통해 발견한 진리를 삶으로 끌어오고자 했습니다. 광막한 우주와 기나긴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자리를 찾는 이 여정은, 우리를 가둔 올가미를 풀고 새로운 서광을 맞이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 대하여|『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깊이 읽기 0편|이명현 × 이미영
(주)사이언스북스칼 세이건 살롱 2021
  • 생명과학
  • 뇌인지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