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국책연구소

2 Contents
최신순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김흥남 전 원장

1983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입소하여 30년 넘게 헌신한 김흥남 전 원장은 대한민국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이끈 주역입니다. 특히 2002년 당시 생소했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며 IT와 조선, 자동차 등 이종 산업 간의 융합 연구를 활성화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품 내부에 지능을 부여하여 선박이나 자동차를 스마트하게 변화시키는 혁신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이 관련 기술에 주목하던 시기에 발맞춘 ETRI의 선제적인 기획은 국가 산업 전반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ETRI는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재산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전 세계 공공 기관과 연구소를 통틀어 특허 경쟁력 1위를 3년 연속 유지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TDX, CDMA, 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거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확보한 고부가가치 표준 특허들 덕분이었습니다. 국제 표준 특허는 기술적 영향력이 매우 크며, 벨 연구소나 MIT 같은 유수의 기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ETRI가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는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 환경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ETRI는 국가 행정의 디지털화를 선도하며 주민등록 행정정보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했습니다. 당시 열악한 통신 환경을 고려해 메인프레임에 모든 데이터를 넣는 중앙 집중식 대신, 각 동사무소 PC에 데이터를 분산 저장하는 '바텀업' 방식을 선택한 것은 혁신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2~3초 만에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이는 훗날 우리나라가 UN 전자정부 평가에서 수년간 세계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개척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달렸던 연구원들의 열정이 오늘날 전자정부 강국의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실질적인 현장 중심의 사고는 조선 IT 융합 기술인 SAN(Ship Area Network)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철판으로 가로막힌 선박 내부의 극심한 전파 간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실마리를 찾은 일화는 유명합니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무겁고 복잡한 유선 통신망 대신 효율적인 무선통신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초의 유무선 통합 기술인 SAN을 개발하고 국제 표준으로 등록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책상 앞이 아닌 실제 문제가 발생하는 산업 현장에서 답을 구하는 태도는 공학적 난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기획된 '기가코리아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을 5G 기술 강국으로 도약시켰습니다. 5,500억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했고, 그 결과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세계 최초 5G 시연이라는 성과를 도출했습니다. ETRI 연구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는 'IT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품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며 국위를 선양해 왔습니다. 지난 반세기의 눈부신 성장을 발판 삼아, 앞으로의 100년을 바라보며 세계 최고의 연구소로 거듭나기 위한 ETRI의 끊임없는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김흥남 전 원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50주년 특별 기념 인터뷰 영상
  • 융합
  • 공학·기술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조관제 전 본부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5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라는 거대한 성취 뒤에는 연구소의 기초를 닦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 전전자교환기(TDX) 개발 사업의 착수는 수입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국내 통신기술 자립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당시 리더들은 매년 기초연구비를 확보하여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단순한 연구 수행을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소가 지향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행정 업무의 핵심인 인사관리 과정에서도 연구원 중심의 철학은 매우 엄격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당시의 리더십은 행정 조직이 연구자들을 더욱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호된 훈련 과정을 거치게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질책이 아니라, 연구소의 주역인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진정성 있는 교육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행정 인력들은 단단하게 단련되었고, 연구소에 대한 깊은 애착과 충성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헌신이 모여 연구원의 조직적인 성장을 이끌어낸 동력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은 연구원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면서 전례 없는 변화와 갈등이 공존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88 서울 올림픽 이후 발생한 전면 파업과 공개 교섭은 매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기준도 선례도 없던 시절에 행정 실무자들은 젊은 연구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새로운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야 했습니다. 밤샘업무와 치열한 협상 과정은 고단했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그 시간들은 훗날 연구원이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체계를 갖추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연구원이 처했던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외부기관으로의 이관 논의가 제기되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연구소의 독립성과 자긍심을 지키기 위한 리더의 단호한 결단은 오늘날의 ETRI를 있게 한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상급기관의 실무적인 검토 소식에 대해 즉각적으로 연구원의 가치와 존립 이유를 역설하며 강력히 항의했던 모습은 기관의 미래를 내다본 혜안이었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리더십과 기관 보호 의지는 연구원들이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기술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리더들의 선견지명은 사소한 인프라 계획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에 이미 폭발적인 차량 증가를 예상하고 주차장 확보를 고민하거나, 환경 보호를 위해 지하주차장을 설계했던 일화는 그들이 얼마나 먼 미래를 준비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역대 원장님들과 구성원들이 보여준 기관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헌신은 50년 역사 내내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난 50년의 성공 신화를 발판 삼아,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50년 역시 혁신과 화합으로 가득 찬 역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조관제 전 본부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50주년 특별 기념 인터뷰 영상
  • 공학·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