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박선희 전 소장
이론 물리학을 배경으로 1994년 ETRI에 입소한 후, 초기에는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 처리 방법을 탐구하는 기초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당시의 가장 큰 목표는 ETRI 저널을 SCI 등재지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단 세 명의 인원이 주축이 되어 수많은 논문을 쓰고 인용 지수를 높이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한 끝에, 국내에서 두 번째로 해당 저널을 SCI에 등재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학문적 영역을 확장하고 연구의 질적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연구의 영역을 IT 기반의 바이오 메디컬 융합 기술로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유전체 지도 완성 시기에 맞춰 유전자와 단백질 기능을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고가의 의료 장비를 대체할 수 있는 경제적인 골밀도 측정 시스템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2005년 개발한 바이오 셔츠는 심박수와 호흡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휴대폰으로 전송하는 혁신적인 성과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나라 IT 융합 기술이 활성화되고 새로운 산업 분야가 개척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융합 기술 연구는 IT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매주 대형 병원을 방문하여 의사들이 진단하고 처치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며 그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했습니다. IT와 바이오 메디컬이라는 서로 다른 두 분야의 언어를 연결하는 과정은 매우 생소하고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양 분야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전문가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전문 지식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경제 위기는 오히려 실용적인 연구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대규모 국책 연구 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연구자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동료 여성 연구원들의 권익 신장에도 앞장섰습니다. 육아와 일의 병행이 극히 어렵던 시절, 여직원 협의회 회장을 맡아 육아 휴게실 건립 등을 추진하며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는 현재 여성 공학인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들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선배 연구자로서 후배들이 자신의 한계를 깨고 끊임없이 도전하기를 응원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모토처럼,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모험하는 자세로 자기 자신을 혁신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ETRI가 지금까지 IT 분야를 이끌어온 국가 대표였던 것처럼, 앞으로도 인공지능 시대의 선구자로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저 또한 후배들이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조력자로 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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