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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50주년 특별 기념 인터뷰 영상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이종호 전 장관

대한민국의 반도체 연구는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당시에는 반도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지만, 1988년 서울대학교 반도체 공동연구소의 개관은 많은 연구자들에게 실제 웨이퍼를 만져보고 실험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교과서에서만 접하던 이론적 지식을 넘어, 실험실에서의 직접적인 실습을 통해 얻은 실무 경험은 이후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갈 핵심 인재들을 양성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초기 환경에서의 치열한 배움은 한 개인의 성장을 넘어 국가적 기술 발전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반도체 소자의 혁신을 이끈 기술 중 하나인 핀펫이나 GAA FET의 발전 과정에는 연구자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과거의 연구 환경은 컴퓨터 라이선스나 장비 사용이 제한적인 열악한 상황이었으나, 많은 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험실을 지키며 기술적 난제들을 해결해 나갔습니다. 특히 소스·드레인의 선택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특허 기술과 같은 성과들은 이러한 끈기 있는 연구 활동의 결과물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논문과 특허를 배출해낸 열정은 오늘날 한국이 글로벌 반도체 강국으로 우뚝 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연구의 길은 단순히 기술적인 성취를 넘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즐거움과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위한 고성능 워크스테이션이나 나노 단위 공정을 위한 클린룸과 같은 고가의 인프라는 필수적이지만,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원리를 발견할 때 얻는 보람은 그 어떤 고충보다도 큽니다.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하는 과정 자체가 연구자에게는 커다란 보상이며, 이러한 도전 정신은 한국의 수많은 과학 기술인이 공유해 온 핵심 가치입니다. 환경의 제약이 있더라도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연구자는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연구 현장에서 쌓은 전문성은 이후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기반이 되어 다양한 산업 발전 프로젝트로 이어졌습니다. '마이칩' 프로젝트와 같은 반도체 지원 사업이나 기지국 저전력화를 위한 인공지능 반도체 연구는 공공 연구기관과 학계가 협업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연구 장비를 현대화하고 출연연의 발전 방향을 고민하는 과정은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연구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필수적인 노력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단순히 산업 성장에 머물지 않고, 국가 전체의 기술 자생력을 확보하며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은 CDMA 세계 최초 상용화와 세계적인 DRAM 개발 등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놀라운 공학적 성취를 거두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국방 반도체 등 더 넓은 영역에서 글로벌 경쟁을 이어가야 합니다. 자연과 세상이 경쟁을 통해 진화해 온 것처럼, 과학 기술 또한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발전할 수 있습니다. 개인 간의 경쟁을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아 도전을 즐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위대한 성과를 발판 삼아 미래의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한 여정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며, 이는 국가의 번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이종호 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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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채종석 전 소장

채종석 전 소장은 1985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근무하며 대한민국의 ICT 기술 발전을 이끌어온 산증인입니다. 그는 무궁화 위성 방송 시스템과 디지털 위성 방송, 그리고 IMT-2000 연구 본부장으로서 WCDMA 개발을 진두지휘하며 국책 연구 개발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국책 연구 개발은 국가가 기술 방식과 시스템을 결정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환경 덕분에 연구진이 오로지 성과 도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기술들은 곧바로 실용화되어 국가 산업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대전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용 자전거 '타슈' 또한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혁신적인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당시 박성효 대전시장의 요청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불과 4개월 만에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이루어지는 놀라운 속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기존의 공용 자전거와 달리 모든 전자 장치와 통신 장치를 자전거 본체로 옮겨 자전거 중심형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성공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는 출연연의 기술력이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으며, 오늘날 스마트 시티 서비스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이동통신 역사의 한 획을 그은 WCDMA 개발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당시 세계 시장이 비동기식으로 흐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시스템 개발 지원 중단이라는 위기가 찾아왔으나, ETRI는 삼성과 손을 잡고 기업 과제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약 6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조직의 와해를 막고, 2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안에 음성 통화와 영상 멀티미디어 시험을 성공시켰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은 삼성이 세계 이동통신 시장을 제패하고 우리나라가 ICT 강국으로 우뚝 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구 개발의 눈부신 성과 뒤에는 동료들의 숭고한 희생과 투철한 연구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채 전 소장은 투병 중에도 연구에 매진했던 동료들을 회상하며, 연구자가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에 대해 조언합니다. 그는 국책 연구 개발을 수주하는 것 자체에 매몰되어 목표를 낮추기보다는, 국가와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주변에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을 면밀히 살펴 협력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단순히 아는 것을 다시 연구하는 비효율을 경계하고 더 높은 가치를 얹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ETRI는 대한민국이 ICT 및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발판 삼아 이제는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열어가는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연구소로 다시 한번 거듭나야 할 시점입니다. 기술 개발은 단순히 경제적 이득을 넘어 인류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가치를 지향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50년 역시 혁신적인 ICT 기술을 통해 세계를 선도하며, 인류 사회 전반에 공헌하는 세계 최고의 ICT 연구 기관으로서 그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해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채종석 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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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최양희 전 장관

최양희 총장은 ETRI의 1호 연구원으로 시작해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정부를 두루 거치며 대한민국 정보통신 기술의 산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연과학이 세상의 진리를 발견하는 일이라면, 공학은 없는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분야라고 강조합니다. 다양한 국가와 기관에서의 풍부한 경험은 그에게 사회와 경제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연구의 중요성을 깊이 일깨워 주었습니다. 공학적 선택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여 온 그의 열정적인 여정은 혁신과 성장을 향한 대한민국의 발걸음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 대한민국은 정보통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ETRI는 외국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우리만의 독자적인 전자교환기를 개발하며 정보통신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특히 최 총장은 미국 IBM 왓슨 연구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는 진정한 힘이 표준화와 특허권 확보에 있음을 날카롭게 간파했습니다. 이후 설립된 정보통신 표준연구센터(PEC)는 한국이 5G와 6G 등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이는 오늘날 한국이 전 세계가 인정하는 표준 강국으로 거듭나는 핵심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ETRI의 역할은 이제 모든 것의 뿌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더욱 진화해야 합니다. 첫째로 대학이 단독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거대하고 중장기적인 기초 연구를 지속하며 국제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둘째로 독자적인 연구 역량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을 위한 든든한 기술 허브가 되어야 합니다. 대만의 ITRI가 중소기업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인 것처럼, ETRI 역시 막강한 인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이 자생할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핵심적인 미션을 완수해야 할 시점입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ETRI가 세계 최고로 도약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요? 최 총장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인공지능(AI)을 시험하고 평가하며 표준을 만드는 '심판관'의 역할을 제안합니다. 전 세계의 기술을 객관적으로 점수 매기고 기준을 설정하는 국제적인 중재자 역할을 주도한다면, 자연스럽게 원천 기술에 대한 강력한 발언권과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는 ETRI가 이미 보유한 세계적인 수준의 표준화 역량과 기술 노하우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역이며,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한국이 독보적인 1등으로 올라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연구 수월성을 높이기 위한 PBS(연구 과제 중심 제도)의 폐지는 새로운 시대의 도전이자 시작입니다. 단순히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형 장기 과제와 소수의 정예 그룹이 이끄는 수월성 연구가 조화를 이루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한국형'이라는 틀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초일류를 지향하며 처절할 정도의 혁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모두를 위한 ETRI(ETRI for All)'라는 새로운 비전 아래, 숭고한 사명감과 철학을 바탕으로 지난 50년의 성과를 뛰어넘어 미래 100년을 향해 힘차게 약진하는 기술 강국의 내일을 기대해 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최양희 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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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박선희 전 소장

이론 물리학을 배경으로 1994년 ETRI에 입소한 후, 초기에는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 처리 방법을 탐구하는 기초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당시의 가장 큰 목표는 ETRI 저널을 SCI 등재지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단 세 명의 인원이 주축이 되어 수많은 논문을 쓰고 인용 지수를 높이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한 끝에, 국내에서 두 번째로 해당 저널을 SCI에 등재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학문적 영역을 확장하고 연구의 질적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연구의 영역을 IT 기반의 바이오 메디컬 융합 기술로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유전체 지도 완성 시기에 맞춰 유전자와 단백질 기능을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고가의 의료 장비를 대체할 수 있는 경제적인 골밀도 측정 시스템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2005년 개발한 바이오 셔츠는 심박수와 호흡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휴대폰으로 전송하는 혁신적인 성과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나라 IT 융합 기술이 활성화되고 새로운 산업 분야가 개척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융합 기술 연구는 IT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매주 대형 병원을 방문하여 의사들이 진단하고 처치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며 그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했습니다. IT와 바이오 메디컬이라는 서로 다른 두 분야의 언어를 연결하는 과정은 매우 생소하고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양 분야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전문가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전문 지식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경제 위기는 오히려 실용적인 연구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대규모 국책 연구 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연구자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동료 여성 연구원들의 권익 신장에도 앞장섰습니다. 육아와 일의 병행이 극히 어렵던 시절, 여직원 협의회 회장을 맡아 육아 휴게실 건립 등을 추진하며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는 현재 여성 공학인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들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선배 연구자로서 후배들이 자신의 한계를 깨고 끊임없이 도전하기를 응원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모토처럼,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모험하는 자세로 자기 자신을 혁신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ETRI가 지금까지 IT 분야를 이끌어온 국가 대표였던 것처럼, 앞으로도 인공지능 시대의 선구자로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저 또한 후배들이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조력자로 남겠습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박선희 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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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과학
  • 뇌인지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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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김흥남 전 원장

1983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입소하여 30년 넘게 헌신한 김흥남 전 원장은 대한민국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이끈 주역입니다. 특히 2002년 당시 생소했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며 IT와 조선, 자동차 등 이종 산업 간의 융합 연구를 활성화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품 내부에 지능을 부여하여 선박이나 자동차를 스마트하게 변화시키는 혁신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이 관련 기술에 주목하던 시기에 발맞춘 ETRI의 선제적인 기획은 국가 산업 전반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ETRI는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재산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전 세계 공공 기관과 연구소를 통틀어 특허 경쟁력 1위를 3년 연속 유지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TDX, CDMA, 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거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확보한 고부가가치 표준 특허들 덕분이었습니다. 국제 표준 특허는 기술적 영향력이 매우 크며, 벨 연구소나 MIT 같은 유수의 기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ETRI가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는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 환경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ETRI는 국가 행정의 디지털화를 선도하며 주민등록 행정정보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했습니다. 당시 열악한 통신 환경을 고려해 메인프레임에 모든 데이터를 넣는 중앙 집중식 대신, 각 동사무소 PC에 데이터를 분산 저장하는 '바텀업' 방식을 선택한 것은 혁신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2~3초 만에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이는 훗날 우리나라가 UN 전자정부 평가에서 수년간 세계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개척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달렸던 연구원들의 열정이 오늘날 전자정부 강국의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실질적인 현장 중심의 사고는 조선 IT 융합 기술인 SAN(Ship Area Network)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철판으로 가로막힌 선박 내부의 극심한 전파 간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실마리를 찾은 일화는 유명합니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무겁고 복잡한 유선 통신망 대신 효율적인 무선통신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초의 유무선 통합 기술인 SAN을 개발하고 국제 표준으로 등록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책상 앞이 아닌 실제 문제가 발생하는 산업 현장에서 답을 구하는 태도는 공학적 난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기획된 '기가코리아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을 5G 기술 강국으로 도약시켰습니다. 5,500억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했고, 그 결과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세계 최초 5G 시연이라는 성과를 도출했습니다. ETRI 연구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는 'IT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품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며 국위를 선양해 왔습니다. 지난 반세기의 눈부신 성장을 발판 삼아, 앞으로의 100년을 바라보며 세계 최고의 연구소로 거듭나기 위한 ETRI의 끊임없는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김흥남 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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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안치득 전 소장

ETRI는 대한민국 디지털 멀티미디어 기술의 요람이자 현대 통신 기술의 근간을 세운 곳입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연구는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HDTV, UHDTV, 그리고 스마트폰의 핵심인 MPEG 표준화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는 디지털 미디어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불모지였지만, 연구진의 꾸준한 도전은 세계 표준을 주도하며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혁신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인류가 미디어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데이터양의 폭발적인 증가를 야기했습니다. 본질적인 정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방대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도의 압축 기술인 소스 코딩 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태동하던 이 아이디어를 국내에 들여와 독자적으로 개척한 결과, 현재 전 세계 스마트폰과 인터넷 서비스의 기본 기술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BTS로 대표되는 우리 문화 콘텐츠가 디지털 환경을 타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데 있어 든든한 기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기술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장의 상업적 이익보다는 2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수적입니다.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초 연구와 미래 지향적인 과제는 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할 영역입니다. 선진국들이 연구자에게 수십 년간 꾸준히 투자하며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꽃피우기를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실패를 용인하고 한 분야에 매진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인공지능 분야의 석학들이 긴 시간의 인내 끝에 세계를 바꾼 것처럼, 기다림의 미학이 과학 기술의 성패를 결정합니다. 인공지능과 모빌리티가 주도하는 미래 사회에서도 사람 간의 소통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거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지연 없이 전달하는 고도의 중계 기술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특히 자율주행차 안에서 인공지능 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압축, 통신 기술이 집약된 새로운 차원의 멀티미디어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물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인이 실시간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적 진보는 연구소가 끊임없이 탐구하고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연구원들은 자신이 수행하는 과제가 국가의 내일을 결정한다는 굳건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목숨을 건다는 비장한 각오로 연구에 몰입할 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창의적인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 성과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연구자 개인의 행복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스스로의 삶을 즐길 때 비로소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고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소신을 갖고 밀어붙이는 용기 있는 도전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길 응원합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안치득 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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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최문기 전 장관

최문기 전 원장은 1978년 ETRI에 입사하여 24년 동안 한국 IT 산업의 성장을 몸소 체험하며 헌신했습니다. 그는 초창기 외국 기술에 의존하던 국내 통신 환경에서 독자적인 망 설계를 시작으로 TDX 교환기 개발에 참여하며 연구원으로서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농어촌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작성한 요구사항들은 한국 실정에 맞는 기술을 구현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열정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대한민국 정보통신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ETRI인으로서의 큰 보람과 자긍심으로 남았습니다. 연구원 시절 그가 맡았던 가장 큰 성과는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라 불린 B-ISDN 사업입니다. 10년에 걸쳐 약 6,850억 원이 투입된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인터넷 인프라의 핵심인 ATM 기술을 연구하고 보급했습니다. 당시 확보한 패킷 기반 기술은 오늘날의 광대역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으며, 한국이 정보통신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8년간의 끈질긴 연구 끝에 기술적 가치를 증명해 냈으며, 이는 후속 연구들이 나아갈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ETRI 원장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ETRI 르네상스'를 기치로 내걸고 기술 사업화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연구실에만 머무는 기술이 아니라 실제로 가치를 창출하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 수많은 보직자를 대상으로 기술 사업화 교육을 시행하고, 공공 부문 최초의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여 연구 성과가 시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단순히 논문과 보고서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연구 문화를 정착시킨 것은 그의 임기 중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통신 역사는 TDX 교환기와 CDMA 개발 전후로 나뉩니다. TDX 교환기 개발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7번째 TDX 교환기 개발국으로 이름을 올렸고, CDMA의 경우 세계 최초의 상용화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정부와 KT, 그리고 민간 기업들이 원팀으로 뭉쳐 불가능해 보이던 목표에 도전한 결과였습니다. 독자 기술 확보를 위해 혈서까지 썼던 절박함과 퀄컴과의 협력을 이끌어낸 결단력은 ETRI 연구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었으며, 한국 IT 산업의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연구원이 가져야 할 핵심 가치는 결국 '도전'과 '세상과의 소통'입니다. 기술 사업화의 주체는 결국 연구원 본인이며, 세상과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선배들의 헌신으로 일궈낸 지난 50년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변화에 발맞춘 새로운 도전이 필수적입니다. 연구소가 제공하는 지원과 기회를 발판 삼아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ETRI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혁신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최문기 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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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오수영 전 소장

엔지니어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연구개발의 본질은 언제나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에 대한 실질적인 솔루션을 찾아내는 데 있었습니다. 단순히 이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용화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실효성 있는 도움을 줄 때 비로소 기술의 진정한 가치가 증명된다고 믿습니다. 휴렛팩커드에서의 경험은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을 배우게 했고, 이는 훗날 스타트업과 국책 연구소에서의 행보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유용한 기술을 개발하고 그것이 널리 쓰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연구자로서 가장 큰 보람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수행했던 와이브로와 지상파 DMB 칩 개발은 상용화라는 목표를 달성한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입니다. 과거 CDMA 기술 개발 당시 겪었던 라이선스 한계를 넘어, 우리가 직접 개발한 칩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과정은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물론 태양광 실리콘 개발처럼 글로벌 시장의 가격 경쟁에 밀려 상용화 문턱에서 멈춰 선 아쉬운 사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의 과정은 기술 개발에 있어 경제성과 신뢰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현재 집중하고 있는 영농태양광은 좁은 국토 면적이라는 한국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적인 대안입니다. 농지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되, 농작물의 수확량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면서도 전력을 생산하는 이 방식은 이미 일본 등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설치 비용을 낮추기 위해 지면에서 조립한 후 직립시키는 새로운 시공법을 도입하여 경제성을 확보했습니다. 특정 광 스펙트럼을 조절해 오히려 수확량을 늘리는 시도까지 더해지며, 에너지와 농업이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미래 모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정보통신기술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국책 연구소인 ETRI와 정부의 선도적인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의 공세를 이겨내고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도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타인의 기술을 빠르게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합니다. 국책 과제는 단순히 기술을 축적하는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상용화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핵심 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에는 엔지니어의 역할 또한 변화해야 합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숙련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지휘자로서의 역량이 중요합니다. 지난 50년간 국가 발전을 이끌어온 ETRI가 앞으로도 인공지능 응용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며 우리나라 ICT의 미래를 밝혀주기를 기대합니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힘은 여전히 기술 발전의 시작점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오수영 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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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김채규 전 소장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여정은 197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전자계산센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컴퓨터조차 없던 척박한 환경이었으나, 선구적인 연구원들은 소프트웨어의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이후 국가적 조직 개편을 거쳐 ETRI로 소속이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연구의 맥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의 전산화 작업은 한국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전 세계에 증명하며 국가적 위상을 높인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7년 의료보험 제도의 실시는 병원 행정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청구 업무를 수작업으로 처리했기에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어도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바로 국산 병원 전산 패키지인 'MEDIOS'입니다. 병원 현장에서 밤낮없이 매달린 끝에 탄생한 이 시스템은 수작업의 비효율성을 완전히 걷어냈습니다. 이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이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다시 보게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우리 스스로 컴퓨터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습니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 뒤에는 보이지 않는 전산 시스템의 힘이 컸습니다. 수천 명의 기자들에게 경기 흐름과 기록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이는 '또 하나의 금메달'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성공은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했습니다. 이후 삼성SDS나 LG CNS와 같은 대형 전산 기업들이 설립되는 기반이 되었으며, 아무것도 없던 맨땅에서 일궈낸 성과들이 모여 오늘날 IT 강국의 기초를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가정 내부로 이어져 정보가전과 디지털 홈네트워크 시대를 열었습니다. 사용자의 음성이나 동작에 반응하는 스마트 가전과 셋톱박스 중심의 홈네트워크 기술은 우리 연구진의 땀방울이 맺힌 결과물입니다. 특히 관객이 영화 속 주인공과 소통하는 인터랙티브 무비나 4D 극장 기술의 시초는 한국의 혁신성을 세계에 알린 사례입니다. 이러한 융합 연구의 성공은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는 솔선수범의 자세를 가졌기에 가능했습니다. 국가출연연구소의 연구원으로서 가장 큰 보람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일상에 뿌리내린 모습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과거 연구자들이 직접 기술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열정은 이제 후배들에게 이어져 다음 50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R&D 환경 속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ETRI라는 이름 아래 형성된 끈끈한 유대감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모든 연구원이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기술 강국으로서 세계 무대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김채규 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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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조현숙 전 소장

1982년 ETRI 공채 1기로 입사하여 대한민국 통신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전자 교환기(TDX) 개발에 참여하며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후 디지털 위성 방송 시대로 접어들면서 유료 방송 시청을 제어하는 ‘제한 수신 시스템(CAS)’ 개발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당시 보안 기술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기술에 의존하기보다 우리만의 국산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연구비를 확보하고 표준화를 추진하며 정보보호 분야의 기틀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정보보호 관련 교육 과정이나 전문가가 거의 없어 독학으로 보안 기술을 습득해야 했습니다. 국가보안기술연구소의 전신인 보호기술부의 도움을 받으며 연구를 이어간 끝에, 전자상거래 서비스 도입에 맞춰 정보보호연구본부를 창설하고 조직을 확장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비록 연구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감사나 보직 해임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시간을 개인적인 연구 역량을 다지는 기회로 삼아 정보보호 분야의 기반을 굳건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 여성으로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대한민국 정보보호를 책임지는 중책을 수행했습니다. 현재는 코드게이트 보안포럼 이사장으로서 여전히 이 분야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IT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보안의 난이도는 높아지기에, 젊은 인재들의 참신한 감각과 선배들의 정책적 경륜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보보호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적응해야 하는 고된 분야이지만, 그만큼 국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단순히 서류상의 성과로 남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때 기술의 가치는 진정으로 증명됩니다. 과거 전전자 교환기(TDX) 성공의 열쇠는 연구소가 시제품 제작 단계까지 깊이 관여하여 기업이 기술을 완벽히 흡수할 수 있도록 지원한 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연구 개발 주기와 상용화 사이의 간극이 벌어져 기업들이 기술을 이어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여주기식 연구가 아닌,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처절하고 밀도 높은 연구 환경 조성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연구과제중심제도(PBS) 기반 연구 환경은 연구원들이 단기 성과에 매몰되게 만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니어 연구원들을 기업 현장에 파견하여 실제 시장의 요구사항을 체득하게 하는 등 연구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난 50년 동안 ETRI가 대한민국 IT 발전을 견인해 온 것처럼, 앞으로의 50년도 원천 기술 확보와 특허 자산화를 통해 세계 최고의 기술 경쟁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끊임없이 혁신할 때 우리 기술의 가치는 계속될 것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조현숙 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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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김명준 전 원장

1986년 ETRI에 입사하여 선임연구원을 시작으로 연구원장까지 역임한 한 연구자의 여정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기술적 기반이 매우 취약했기에, 연구자는 낮은 기술 수준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려 번듯한 국가 기술력을 갖추겠다는 일념으로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35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꾸준히 성과를 냈으며, 퇴임 후에도 중소기업 지원과 원자력 발전소의 인공지능 도입을 돕는 등 국가 발전을 위한 기술적 조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40여 년간의 기술 개발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쳐 진화해 왔습니다. 1980년대에는 선진국 제품을 분석하여 다시 만드는 역공학이 주를 이루었으나, 90년대에는 국제 표준을 직접 구현하는 단계로 올라섰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시스템 통합을 통해 독자적인 서비스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는 새로운 개념을 증명하는 단계를 거쳤습니다. 이제 2020년대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개념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시점이며, 이는 우리 후배 연구자들이 나아가야 할 핵심적인 방향입니다. 연구의 성과는 논문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기술 사업화와 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표적인 국책 사업인 ‘한우리’ 과제를 통해 독립적인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는 180여 건의 기술 이전과 60여 건의 국제 특허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특히 연구원들을 독려하여 설립한 벤처 기업 중 세 곳이 상장에 성공하며 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생명력을 얻는지 증명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단지 기술적 성공을 넘어 연구와 사업화, 그리고 창업이 선순환하는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연구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기술 개발만큼이나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과거 관행적으로 사용되던 부적절한 호칭을 개선하여 수평적인 문화를 정착시켰고, 연구 결과물을 정기적으로 책자화하여 지식을 공유하는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후배들을 마치 자신의 자녀처럼 아끼는 마음으로 연구소 내 도서관을 확충하고 실개천 등 휴게 공간을 조성하는 정서적 환경 개선에도 힘썼습니다. 이는 연구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 연구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돕기 위한 진심 어린 노력이었습니다. 국가 연구소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자부심은 창의적이고 이타적인 업무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와 산업계를 위해 헌신한다는 마음가짐은 비록 외부의 엄격한 비판이 있을지라도 연구자들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됩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세상 그 어떤 직장보다 큰 보람을 선사합니다. 이제 우리 후배들은 우물 안 개구리식 연구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시각을 갖추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개념으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멋진 연구원으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김명준 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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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조관제 전 본부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5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라는 거대한 성취 뒤에는 연구소의 기초를 닦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 전전자교환기(TDX) 개발 사업의 착수는 수입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국내 통신기술 자립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당시 리더들은 매년 기초연구비를 확보하여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단순한 연구 수행을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소가 지향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행정 업무의 핵심인 인사관리 과정에서도 연구원 중심의 철학은 매우 엄격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당시의 리더십은 행정 조직이 연구자들을 더욱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호된 훈련 과정을 거치게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질책이 아니라, 연구소의 주역인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진정성 있는 교육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행정 인력들은 단단하게 단련되었고, 연구소에 대한 깊은 애착과 충성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헌신이 모여 연구원의 조직적인 성장을 이끌어낸 동력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은 연구원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면서 전례 없는 변화와 갈등이 공존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88 서울 올림픽 이후 발생한 전면 파업과 공개 교섭은 매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기준도 선례도 없던 시절에 행정 실무자들은 젊은 연구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새로운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야 했습니다. 밤샘업무와 치열한 협상 과정은 고단했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그 시간들은 훗날 연구원이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체계를 갖추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연구원이 처했던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외부기관으로의 이관 논의가 제기되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연구소의 독립성과 자긍심을 지키기 위한 리더의 단호한 결단은 오늘날의 ETRI를 있게 한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상급기관의 실무적인 검토 소식에 대해 즉각적으로 연구원의 가치와 존립 이유를 역설하며 강력히 항의했던 모습은 기관의 미래를 내다본 혜안이었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리더십과 기관 보호 의지는 연구원들이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기술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리더들의 선견지명은 사소한 인프라 계획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에 이미 폭발적인 차량 증가를 예상하고 주차장 확보를 고민하거나, 환경 보호를 위해 지하주차장을 설계했던 일화는 그들이 얼마나 먼 미래를 준비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역대 원장님들과 구성원들이 보여준 기관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헌신은 50년 역사 내내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난 50년의 성공 신화를 발판 삼아,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50년 역시 혁신과 화합으로 가득 찬 역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조관제 전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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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이상훈 전 원장

대한민국 ICT 발전의 산증인으로서 보낸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여정이었습니다. 1984년 초고속 정보통신망의 태동기에 연구를 시작하여 망 구조와 영상 전송 기술의 기초를 닦았고, 이후 기업 현장에서 초고속 정보통신망의 상용화를 이끌며 기술의 전 생애주기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은 훗날 연구 현장으로 다시 돌아와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를 설계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연구자로 시작해 경영자를 거쳐 다시 연구 기관의 수장으로 마무리한 삶은 기술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동시에 일깨워준 축복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연구소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적인 과제들은 때로 과감한 결단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과거의 양적 성장에 가려져 있던 재무 건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불사하며 연구소의 자립 기반을 다졌습니다. 단순히 특허의 숫자를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특허 포트폴리오 중심의 전략적 관리를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연구 성과가 단순히 논문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에서 기술료 수익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제시한 ‘지능형 디지털 변혁(IDX)’은 정보통신기술이 전 산업 분야에 스며드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초연결, 초지능, 초실감이라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를 바탕으로 연구 포트폴리오를 재편하여 5G 이동통신과 엑소브레인 인공지능, 그리고 UHD 방송 기술 등 미래 선도 기술 확보에 주력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IT 산업 육성이라는 틀을 넘어, 모든 산업에 인텔리전스를 입히는 전방위적 혁신을 목표로 한 것이었습니다. 연구원들의 열정이 담긴 이러한 성과들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기술 표준을 선도하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창의적인 연구 성과는 경직된 조직 문화가 아닌, 활발한 소통과 자율적인 환경에서 피어납니다. 연구원 개개인의 창의력이 대세가 되는 시대에 맞춰 수평적인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 보직자 선출 과정에 연구원들이 직접 참여하게 하는 등 참여형 소통의 창구를 넓히고, 연구 본연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정적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연구원들이 불필요한 규제나 관습에서 벗어나 오로지 탐구와 실험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6G 시대는 단순히 전송 속도의 향상을 넘어, 일상에 지능형 서비스를 범용화하는 새로운 차원의 연결이 될 것입니다. 미래의 네트워크는 언제 어디서나 사용자를 안전하게 지원하며 신뢰할 수 있는 지능형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유해한 시도를 차단하고 유익한 소통만을 유지하는 자율형 보안망의 구축은 인류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의 저력을 바탕으로, 차세대 연구자들이 기술 주권을 지켜나가는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며 구성원 모두의 건강과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이상훈 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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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전길남 KAIST 박사

한국 과학기술 발전의 초석을 다지던 시기, 전자기술연구소와 KIST 사이의 미묘한 경쟁과 협력 속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들이 싹텄습니다. 당시 전화교환기 개발과 같은 국가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경상현 박사와 같은 선구자들은 구체적인 프로젝트의 성격보다는 연구자 개인의 역량을 신뢰하며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이는 기술적 이해가 부족했던 당시 상황에서 연구자가 소신껏 도전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학문적 배경이 깊은 동료들의 지지와 원조는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핵심적인 원동력이었습니다. 1980년대 정부의 주된 목표는 반도체와 컴퓨터의 국산화를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 국산화는 성공할 경우 세계에서 열 번째 정도의 순위에 오를 수 있는 중요한 상업적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 2위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젊은 연구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비록 가용 인력과 자원이 컴퓨터 개발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인터넷 프로젝트를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5위보다는 세계 2위라는 상징적인 목표가 주는 에너지는 연구진이 불가능해 보이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도록 이끄는 강력한 동인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개발의 성공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끈질긴 도전 정신의 산물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생들과 함께 구미 전자기술연구소를 연결하며, 마침내 해외 컴퓨터에 로그인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미국 UCLA에 이어 세계 2위로 이뤄낸 쾌거였으며, 연구자들이 밤낮없이 몰두한 끝에 얻은 결실이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성과는 연구실 안에서의 지식 탐구에만 머물지 않고, 유럽의 험난한 북벽을 등반하는 것과 같은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미친 듯이 몰입하고 끝까지 완수해내는 태도는 과학자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자 성공의 열쇠였습니다. 우수한 인재 양성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KAIST를 비롯한 국내 연구진은 MIT나 스탠퍼드와 경쟁하기 위해 학생들을 해외로 보내고 실력을 검증받게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전 세계 50여 개국에 인터넷을 보급하고 상용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국제적인 리더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10여 개의 국제 기구를 결성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은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음을 증명합니다.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극한의 집중력은 연구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한 토대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인터넷 혁명처럼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연구 기관의 철저한 국제화가 필수적입니다. 우수한 외국인 연구자들이 유입되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독보적인 기술력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80세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선구자의 정신은 오늘날의 젊은 과학자들에게도 큰 귀감이 됩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국제적인 협력만이 다음 50년의 미래를 밝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전길남 KAIST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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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한기철 前 이동통신연구소장

1970년대 대한민국은 전화 한 회선을 구하기 위해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할 정도로 통신 불모지였습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ETRI는 벨기에와 미국의 기술을 습득하며 한국형 전전자 교환기(TDX) 개발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마침내 개발된 TDX-1과 TDX-10은 농어촌과 대도시를 잇는 국가 통신망의 중추가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인들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없다는 외부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대한민국이 통신 강국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선 전화의 보급이 완료될 무렵, 사람들은 손안의 전화기인 이동통신을 열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날로그 방식은 품질이 낮고 비용이 비쌌기에 ETRI는 미국의 퀄컴과 손잡고 CDMA 방식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상용화 의지를 보이지 않던 기술이었지만, 한국 연구진은 TDX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을 습득하고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1996년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라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이는 우리 기술로 만든 통신 시스템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서막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만 사용 가능했던 CDMA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은 세계 단일 표준인 WCDMA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과거 퀄컴에 기술료를 지불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원천 기술을 국제 표준에 삽입함으로써 기술료를 받는 국가로 탈바꿈했습니다. 특히 거대 기업인 애플을 상대로 당당히 기술료 협상을 벌여 수백억 원의 기술료(로열티)를 받아낸 성과는 한국 통신 기술의 위상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로밍 시대를 열었습니다. 4G 시대로의 전환기에는 CDMA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히 OFDM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한국의 결정에 세계가 주목하며 따라올 만큼, 대한민국의 위상은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은 단순히 장비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 국민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고 언제 어디서나 대용량 데이터를 소비하는 일상은 연구원들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빚어낸 소중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의 통신은 단순한 영상이나 음성 전달을 넘어 인간의 감정까지 소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이제는 정보통신기술(ICT)이 인프라를 넘어 세상을 연결하는 만능 도구가 되는 시대입니다. 은퇴한 과학자는 후배들에게 지식을 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장 실천하는 선구자가 되어줄 것을 당부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통해 성취감을 맛보고 묵묵히 정진하다 보면 어느덧 세계 최고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구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자 자유입니다.

ETRI50년, ETRI를 빛낸 사람들 한기철 前 이동통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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